박계리의 스케치北 | 한올 한올 꿰고 이으며 만나다 2015년 6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42
한올 한올 … 꿰고 이으며 만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업을 같이 하는 과정, 작업자 사이에선 어떤 공감들이 작용할까?
작가 함경아는 북한의 장인들과 함께 자수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다다를 수 없는 장소를 넘어서는 소통’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이 외에도 ‘바느질의 속삭임’이라는 이름으로 9개의 태피스트리(tapestry, 다채로운 선염색사(先染色絲)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시리즈를 발표한 바 있다. 리움에서 열린 삼성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에서도 <추상적 움직임 / 모리스 루이스 ‘무제’ 1960>을 비롯한 시리즈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자수 프로젝트는 불통의 남과 북,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극 속에서 특이하면서도 아주 소소해 보이는 소통을 시도한 프로젝트였다. 작업 방식은 이랬다. 작가는 밑그림을 구성해서 북쪽에 사는 장인들에게 보낸다. 물론 이 작가는 북쪽에서 함께 작업할 이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북한의 고어체로 개작한 국내외 인터넷 기사들, 이라크 어린이들이 그린 전쟁 공포증적 이미지들을 알레고리로 구성해서 보냈고, 북한의 자수 작가들이 이를 대형 자수 작업의 밑도안으로 다시 번안하여 작업을 해 다시 남쪽의 작가에게 보내게 된다.
함경아, 북한 자수 작가와 공동 프로젝트 시작
함경아 작가의 밑그림은 중국과 북한을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하여 전달되었다. 이 ‘매개자’를 통해서 진행된 첫 작업은 오랜 시간 걸려 완성된 11개의 자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고 작가에게 보고되었다. 그러나 결국 함경아의 손에는 어떠한 작품도 전달되지 못했다. 북한 당국의 검열에 의해 압수당했다는 알 수 없는 전달만 받았다. 이와 함께 그 ‘매개자’ 역시 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이 실패의 과정이 화가에겐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함경아는 이 작업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함경아는 설치, 영상, 도자기,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외면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 특히 개인을 옥죄는 거대한 정치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사회의 각종 부조리 드러내기,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 등에 대한 꼬집기를 일관되게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에게 자신이 시도한 소통의 과정에서 맞닥뜨린 분단 현실의 생생함은 이 소통을 지속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요구하는 ‘매개자’의 중간 수수료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돈의 쓰임처. 눈이 가려진 채 ‘매개자’의 손에만 의지해 미지의 길을 걸어갈 때와 같은 답답함과 불안감. 이 소통의 과정에 관계된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도 알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그리고 하나씩 힘겹게 전달되어 오는 작품들 속에서 함경아는 상상과 현실이 뒤엉킨 분단의 생생한 과정을 체감하며 모든 느낌을 그의 작품에 응축하고 있다.
북한 자수 작품의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경지에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추상적 움직임 / 모리스 루이스 ‘무제’ 1960>는 모리스 루이스의 작품 <무제>를 자수로 작업한 것이다. 북한 미술계에서는 아직도 추상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자수 작가들이 모리스 루이스 작품을 알고 있었을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모리스 루이스 화면의 서정성, 미묘한 색의 흐름이 주는 울림을 자수라는 매체로도 가능할 지는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추상적 움직임 / 모리스 루이스 ‘무제’ 1960>은 화면 위를 문지르는 유화 붓질이 주는 색의 울림을 화면을 하나하나 꿰매어 나가는 자수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유화보다 더 깊은 색의 울림을 뿜어내고 있었다. 작업을 끝내고서 북한의 자수 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작품 앞에서 감상자들은 아름다운 작품에 수를 놓은, 이름 모르는 북한의 자수 작가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상상한다. 북한 땅에서 하나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실체로써의 작가를 대신해 그가 만들고 보내온 이미지로 작가를 만난다. 이는 북한의 자수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한의 작가가 보내온 이미지들을 며칠이고 바라보면서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 또한 이미지를 통해 남한의 작가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는 때론 매혹적이지만 이미지를 통한 소통은 늘 불안정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함경아의 프로젝트는 소통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이면에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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