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송헌주. 김교수 2015년 7월호
이달의 인물
미주 독립운동에 헌신한 송헌주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미주 한인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한 송헌주(宋憲澍, 1880. 10. 22. ~ 1965. 7. 31)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대한제국기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1903년경 이민회사의 사무원으로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능숙한 영어실력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하와이 한인사회와 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6년경 미국 본토로 건너간 선생은 1907년 헤이그특사의 통역을 맡았으며, 1916년 한인중앙학원 교장으로 초빙되어 하와이로 다시 건너간 뒤 제일한인감리교회 목회를 거쳐 1917년 이승만이 교장으로 있던 한인여학원 부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미주에 알려진 직후 선생은 하와이 한인들로부터 독립금 3만5천 달러를 모금하여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등에 사용하도록 지원하였다. 1930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을 지원하며 미주 독립운동을 촉진시키고자 선생은 김규식과 함께 미주한인연합회를 이끌며 재미한인의 통합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취임해 미주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재미한인단체의 역량집중과 항일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41년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국방과장을 맡아 맹호군으로 불리던 캘리포니아주 민병대 소속의 한인국방경위대 경위로 임명되었다. 1944년 재미한족연합회 위원으로 활약하다 해방 직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유엔연합국회의에 임시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하였으며 1965년 80세를 일기로 미주지역 독립운동 및 단체 통합에 헌신한 삶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선생의 미주 독립운동에 헌신한 삶을 조명하기 위해 7월 2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7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 사진을 특별 전시할 계획이다.
김교수 대위,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다
국가보훈처는 김교수 육군 대위를 7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3년 7월 강원도 김화 교암산의 전초진지인 ‘가’고지에서 김교수 대위가 이끄는 제6사단 6중대가 중공군 제199사단을 상대로 백병전을 전개했다. 1개 중대가 1개 연대의 적에 맞서 약 3시간 동안 8만7천발의 포격을 받으면서도 8시간이나 진지를 사수하고 1,200명의 적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거둔 방어 전투였다. 김 대위는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적진으로부터 날아든 총탄에 전사했다. 단 6명의 생환이 말해주는 이날의 처절했던 전투 덕분에 국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일진일퇴의 혈전을 거듭한 김교수 대위에게 정부는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면서 그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전군의 귀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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