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인터뷰 | “요리에는 이념이 없습니다” 2015년 7월호
통통 인터뷰 | 윤종철 요리사
“요리에는 이념이 없습니다”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옥류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점답게 인산인해를 이룬다. 삼삼오오 외식을 나온 가족들, 평양을 찾은 유명인사와 외국인 관광객들, 맛있는 요리가 입속에 퍼지면 얼굴에서는 웃음이 번진다. 한편 주방에서는 70여 명의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뜨거운 불길과 멈추지 않는 칼질로 각자 사투를 벌인다. 윤종철 요리사. 그의 치열한 요리인생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요리를 할 생각은 추호도 해 본적이 없다. 가부장적 인식이 강한 북한에서 주방은 여성의 몫이었다. ‘요리? 그거 칼질이나 좀 하는거지.’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일반인들은 요리사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세계적 요리사가 남성이라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얄궂게도 그를 주방으로 끌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삼대째 요리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 역시 이 길을 걷게 됐다. 당에서는 18살 초모병을 평양 옥류관으로 배치했다.
옥류관을 찾은 이들의 고향은 다양했다. 그만큼 취향도 달랐다. 옥류관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기회였다. 관계를 돈독히 해두면 훗날 득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각 지역의 요리를 터득하며 다양한 메뉴를 섭렵해갔다. 같은 요리도 지방에 따라 표현하는 맛이 달랐다. 그렇게 요리에 재미를 붙여갔다. 점점 요리 자체가 목표가 되어갔다. 특히 세계적으로 이름난 옥류관에 있다는 자부심은 그를 지탱한 힘이었다.
옥류관은 과연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다. 인기메뉴는 단연 냉면. 메밀 30%, 전분 70%로 면발을 만든 후, 엄선된 사골과 양지머리를 6시간씩 삶고 나면 맑은 국물이 나왔다. 이렇게 우려낸 육수는 자갈, 모래, 숯, 깨진 사기그릇을 층층이 쌓고 세 차례 여과시켰다. 그 위에 갖가지 고명을 얹으면 특제 냉면이 완성됐다. 깊은 맛은 정성에서 나온다는 기본 진리가 옥류관을 지배했다.
“서울에서도 옥류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복무 기간이 끝난 후에는 회령경공업단과대학에서 발효 공부를 하며, 더 깊게 요리를 알아갔다. 그러던 중, 나라 전체에 닥친 대규모 식량난은 수많은 사람을 기아에 허덕이게 했다. 비참한 현실은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느 곳도 이곳보다는 낫지 않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요리사로서의 삶도 북에 모두 두고 오기로 했다.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으리라.
중국을 거쳐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남조선이 대한민국이라고?’ 낯선 환경에서의 새로운 음식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던 그때, 거리의 ‘함흥냉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반가웠다. “전 북에서 왔습니다. 혹시 여기 함흥 출신 요리사가 있습니까?” 혹시나 북에서 온 지인을 만나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의 당당함에 가게 주인은 한참을 바라보다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북한 출신이 없습니다. 간판만 함흥이에요.” 멋쩍었지만 이왕 고향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하지만 함흥냉면은 함흥냉면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될수록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됐다. 이따금 어머니는 속도전떡을 해주셨다. 뻥튀기를 가루내어 찰떡보다 질기게 만드는 이 떡은 이름처럼 조리 시간이 짧다. 대신 최대한 천천히 소화되도록 하여 아침에 먹으면 저녁까지 든든하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을 기억하면 남한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외식을 절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런 고집을 지키지 않는다면 고유성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산해진미도 중요하지만 그 맛을 잊으면 정체성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온 지 10여 년. 요리가 아니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왔던 그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요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다시 앞치마를 매고 칼을 잡기로 한 이상 제대로 된 북한의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각오가 앞섰다. 그의 입맛이 곧 북한의 맛이었다. 서울에서도 옥류관의 맛을 보여주기로 했다.
‘동무밥상’ 냉면·순대·오리불고기 등 북한 맛의 향연
현재 그는 서울시내의 ‘호야쿡스’에서 ‘동무밥상’을 선보이고 있다. “동무는 친구를 뜻하죠. 친구끼리 편하게 이야기하고 밥 한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북한을 조금 더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훗날 북한에 갔을 때 ‘아, 그 사람이 해준 맛이랑 똑같네.’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동무밥상’의 메뉴에는 익숙한 음식들이 많다. 옥류관의 맛을 그대로 살린 평양냉면은 물론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순대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북한에서는 순대에 당면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접한 한국순대는 충격이었다. 제대로 된 북한순대를 선보이기로 했다. 돼지 내장에 찹쌀과 고기를 갈아 넣어 쫀득함을 살리고, 찹쌀을 한가득 넣어 금세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동무밥상’의 대표적인 메뉴는 오리불고기다. 오리불고기를 선보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지인들에게 갑자기 식사를 차려주게 되었는데 냉장고에는 오리고기뿐이었다. 평소 오리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지인에게 “한 숟가락만 먹어보고 별로다 싶으면 먹지 않아도 좋습니다.”라며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는 국물까지 싹싹 비워버렸다. 설탕, 소금, 식초로만 간을 하여 단출해보였지만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손님들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반찬으로 곁들여 먹는 함경도식 명태식해도 별미다. 잘 삭힌 명태를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다. 이때 도톰한 살은 물론 껍질도 재료를 사용되어 명태식해는 새콤함에 씹는 맛까지 더한다. 북한에서는 유독 식초를 이용해 새콤한 맛을 많이 낸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냉장보관이 어려운 탓이다. 재료의 신선함을 보장할 수 없기에 발달한 방식이다. 더욱이 식초를 이용하면 세균번식을 막아 식중독 예방도 가능하다. 또한 지친 여름입맛에 명태식해는 혀끝을 자극한다.
이 외에도 전분으로 반죽한 양강도식 감자만두, 북한식 수육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음식을 맛본 손님들은 보통 “맛이 심심하네요.” “담백하네요.” “밍밍해요.”의 반응을 보였다. 자극적인 양념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는 조금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민도 많았다. 달고 매운 맛이 강한 한국 스타일로 따라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북한에서 쌓은 요리 경력이 20~30년이다. 한국 스타일로 따라간다고 하면 맛의 공감을 이루는 시간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게 뻔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나도 북한 출신 요리사인데 그 지조를 지키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남북한 요리는 기본적으로 조리 방식이 같다. 그럼에도 식탁에 오르는 결과물에는 많은 차이가 생겼다. 북한에서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지만 남한에서는 양념을 강하게 한다. 또한 남한에는 재료가 풍부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요리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재료 탓인지 버려지는 부분이 많다. 반면 북한에서는 이 부분을 용납하지 않는다. 작은 부분이라도 버려지는 부분이 없도록 하지만 한정된 재료 내에서 요리를 해야 하는 탓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딱 소리 난다’ 두말 할 것 없이 딱 부러지게 맛있다는 의미죠”
그의 정면승부가 통했을까.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깔끔하고 속이 개운해지네요.”라며 발길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먹을수록 심심하고 담백한 음식에서 나오는 본연의 깊은 맛은 점차 입소문을 탔다. 북한음식은 시식 후 입안에 남는 텁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북한에서는 음식이 맛있다는 표현을 ‘딱 소리 난다’라고 합니다. 두말 할 것 없이 딱 부러지게 맛있다는 의미죠.”라고 설명했다.
윤종철 요리사는 북한요리 강습에도 나서고 있다. 의외로 북한요리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한 번은 수강을 마친 수강생이 다시 교육을 받으러 왔다. 더 깊이 알기 위해 다시 찾았다는 그 말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들은 북한요리를 찾기 위해 왔지만 결국 통일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재료를 다듬고 맛의 비법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요리방법뿐만이 아닐 것이다. 요리를 통해 남북 사람이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교감을 나누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꽃피는 작은 교류의 매개체랄까. 요리를 배운 사람은 또 주변사람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알려주며 그 마음이 전해질 것이다.
그가 차려준 밥상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음식으로 소통과 교감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릇에 담긴 것은 정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요리사였던 할아버지는 항상 ‘원수가 찾아와도 음식은 제대로 해줘라. 그게 요리사의 자세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감정을 갖고 요리하면 음식 맛이 제대로 안 나죠. 요리에 이념이 어디 있겠습니까.”
호야쿡스의 ‘동무밥상’은 팝업 레스토랑 형태로 운영되어 화/수요일만 이용 가능합니다.
※ 문의 02)326-3871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3길 27 2층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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