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내친구 | 가슴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 2015년 7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5
가슴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
일주일에 한 번씩 탈북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글쓰기에 대한 기본을 가르치기도 하고, 세계 명작 소개와 함께 인문학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시 한 편을 읽어 준 뒤, 학생들에게 받아 적기를 시킨다. 간단히 복사해서 주면 그만이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다. 시를 적다보면 눈으로 그냥 훑어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에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읽어 줬다.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를 읽어주자, 아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명 북에 두고 온 엄마 생각에 젖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였다. 평소에도 시 읽기를 좋아하던 미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시인들은 진짜 대단해요. 어쩌면 내 마음을 그렇게 고스란히 잘 전했을까요. 전 시를 읽는 이 시간이 정말 좋아요. 지난번에 읽어 주신 ‘가지 않는 길’도 처음 들어 본 시인데 가슴이 짠했구요.”
미진의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랜 가뭄 뒤의 논바닥처럼 메말라 보이던 아이들의 감성이 촉촉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세를 몰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테마로 시 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시가 별 건가! 그저 마음의 물결대로 진솔하게 적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의 특성을 살려 압축과 상징이 넘치는 글이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글이 되겠지만 북에서 와 아직 자기소개 글도 제대로 쓸 줄 몰라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프로적인 것을 원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시인은 못 되기에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문을 여는 시간이면 족하다고 여겼다. 아이들은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특히 ‘가족’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글이 많았다.
엄마
– 김미진
퐁퐁떡을 맛있게 해 주던 엄마 장마당에 나가 장사하느라 손등이 갈라진 엄마 너는 딴세상에서 살라며 두만강까지 밤늦은 시간 날 데려다주고 눈물 훔치며 돌아간 엄마
이제는 제가 엄마에게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예요. 기다려 주세요.
역시 감성적인 미진이의 글은 솔직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이 밖에도 ‘엄마’에 대한 추억 내지는 아픔 등을 시로 나타낸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선 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렇듯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이나 슬픔을 문학 작품을 읽으며 터놓을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 싶었던 나의 의도가 헛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명령보다는, 책이 주는 감동을 심어주다 보면 저절로 책은 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수업 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가 좋은 책을 보여 주며 책 속에 든 보물을 그들이 캐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슴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소개하고 싶은 열망에. 더불어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주옥같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싶은 마음 또한 크다.
얘들아, 다음 시간을 기대한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탈북한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활하나요?
A. N부모님이나 다른 가족 없이 혼자 남한에 온 청소년들을 무연고 탈북청소년이라고 합니다. 가족이 탈북과정에서 헤어지거나, 사망해 보살펴 줄 보호자가 없는 청소년들입니다. 가족과 함께 탈북해 남한에 온 경우에도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의지할 가족도 없이 홀로 낯선 환경에 던져진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임대주택을 배정받지 못하고, 함께 생활하며 도울 가족이 없기 때문에 그룹홈이나 기숙형학교, 대안학교 등의 보호시설에서 생활합니다. 그룹홈이란 단어가 생소하죠? 그룹홈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공동생활가정, 대안가정 등의 공동생활시설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3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 13개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슷한 환경에 놓인 또래 친구들이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며 성인으로서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무연고 탈북청소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더불어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막연한 동정과 왜곡된 편견은 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는 따뜻한 눈길로 봐주세요. 이들을 안아줄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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