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독워크숍 | “동북아, 성찰적 인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2015년 7월호
2015 한독워크숍
“동북아, 성찰적 인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선수현 / 본지기자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은 지난 6월 2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한·독워크숍을 개최했다. 독일통일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이번 한·독워크숍은 독일이 통일을 성취했던 경험과 함께 과거사를 반성하고 주변국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해 나간 과정을 조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이날 워크숍에는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서울사무소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또한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연방의회 의원, 서병철 한·미비전협회 이사장이 발표를,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과 이진모 한남대 교수가 토론을 이어갔다.
서병철 한·미비전협회 이사장은 빌리 브란트 수상이 1970년 폴란드 유태인 위령탑에 헌화 후 무릎 꿇고 참회한 점, 독일이 나치 만행을 잊거나 숨기면 안 된다고 수차례에 걸쳐 발언한 헬무트 콜 수상의 자세, 나치의 각종 범죄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 강조한 앙겔라 메르켈 수상의 모습 등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보였던 과거사 반성 자세들과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군위안부, 강제노역 등 비인도적 사안에 부인하는 일본의 반대 행보를 나열했다. 그는 “독일과 비교했을 때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야욕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는 면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독일, 긴 역사적 경험에서 인정·사과·배상 터득”
이에 대해 이원복 총장은 “일본과 독일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독일은 고해와 사죄가 익숙한 기독교 문화지만, 일본은 할복을 하는 사무라이 문화이다. 문화뿐 아니라 일본은 국제전쟁의 역사가 짧아 전쟁이나 역사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반면 독일은 긴 전쟁역사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터득했다. 일본과 독일의 역사관이 다르듯이 한반도 환경의 다른 점을 전제하고 교훈을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진모 교수는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단순 비교를 통해 흑백논리로, 문화적 차이로 보는 견해는 극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긴장완화와 마찬가지로 인내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개선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 논의의 진전을 위한 프로세스에서 피할 수 없는 난제이다. 아시아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한 성찰적 인식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는 “전후 유럽에서 주변국들이 제일 미워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동북아 내에서 문제가 되는 일본의 행위들처럼 독일도 강제노동 등의 문제가 있었다. 흔히 독일이 문제를 해결하고 화해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어려운 방식이다. 독일은 운이 좋았다. 주변국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피해자가 손을 내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라며 독일의 경험을 소개했다.
인터뷰 |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연방의회 의원
지난 6월 2일 북한을 방문하고 바로 서울을 찾은 하르트무트 코쉬크 의원을 만나보았다. 코쉬크 의원은 4박5일의 일정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종혁 조선독일친선의원당 위원장, 궁석웅 외무성 부상 등 북한 고위 당국자들과 평양에서 회담을 갖고, 북한 강원도 원산 등을 방문했다. 그는 독일 연방하원 7선 의원으로 현재 독·한친선의원협회 회장을 맡는 등 독일 내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Q. 평양 일정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왔다. 이러한 사실을 북에서도 알고 있을텐데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메시지가 있었는가?
북한은 지난해 10월 최고위급 3인방을 파견한 것을 남북관계에 대한 신호라고 했다. 북한이 제안을 한 데 반해 답변은 없고 남쪽은 군사훈련만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독일의 역할을 당부했다.
Q. 7개월 만의 방북이다. 최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되었다는 관측도 있는데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우리가 보기에는 동요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물론 방문단이(다닌 제한된 동선으로는) 증명할 방법도 없다. 분위기는 섞여 있었다. 자극적이고 심한 선동과 갈등을 듣기도 했고 협력을 구하는 상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고위직을 만났을 때는 ‘강성국면에 놓여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Q. 2001년 독일과 북한이 수교한 이후 여러 차례 평양을 다녔다. 북한의 외면도 많이 바뀌고 있는지?
평양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평양의 식당, 건물, 동물원, 학술센터 등과 강원도 원산의 마식령스키장, 보육시설 등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도 (남한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외면은 제한적일 뿐이다. 오히려 다른 지역을 다니며 시장, 뙈기밭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더 이상 비밀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Q. 최근 북한이 핵무기 관련 소형화·정밀화·다각화를 이야기하는데,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가?
일단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것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이은 유훈인 것이다. 그럼에도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할 의사는 없다고 한다. 나는 6자회담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부정적 답변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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