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7월 2일

세계분쟁 25시 | 일촉즉발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분쟁 2015년 7월호

세계분쟁 25시 15

일촉즉발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분쟁

 

영국은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알력을 이용한 분리통치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인도아대륙이 분할되었다. 20세기 초반까지 힌두와 무슬림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두 민족론을 주창한 진나도 처음에는 국민회의에 소속되어 반영(反英)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영국은 종교적 차이를 초월한 인도 전민족구성원의 단결된 힘이 반영 독립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영국은 힌두와 무슬림을 분할해 통치하는 종교적 분할통치에 착수한 가운데 소수파인 무슬림의 종교적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간디의 한 민족론과 진나의 두 민족론은 대립을 낳았고,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독립하게 되었다.

2013년 1월 15일 인도 군인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국경지역을 지키는 모습 ⓒ연합뉴스

2013년 1월 15일 인도 군인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국경지역을 지키는 모습 ⓒ연합뉴스

재앙이 된 무분별한 분리·독립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이 확정된 이후에도 준독립 상태에서 영국의 간접통치를 받고 있었던 562개의 토후국들은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대부분의 토후국들은 주민들의 구성이나 종교를 고려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병합되었다. 그러나 현재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에 있었던 주나가드(Junagadh) 왕국, 남부의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왕국, 북부의 카슈미르(Kashmir) 왕국 등 세 곳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주나가드 무슬림 왕은 국민 대다수가 힌두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으로의 합병을 결정했다. 인도 남부에 위치한 하이데라바드는 힌두교도가 대다수였지만 무슬림 왕에 의해 인도나 파키스탄으로의 병합을 거부한 채 완전한 독립을 주장했다.

파키스탄은 기선을 잡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 카슈미르를 점령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북서 변경주에 거주하는 파탄족(Pathans)을 부추겨 카슈미르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1947년 10월 22일 시작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1949년 유엔의 중재에 따라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종료되었다. 카슈미르는 두 지역으로 분할되어 북부는 아자드카슈미르로 파키스탄령, 남부는 잠무카슈미르로 인도령이 되었다. 카슈미르의 분할로 첫 번째 전쟁은 마무리되었지만 분쟁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한편 1962년 중국과 인도 간에 악사이친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그런데 1년 뒤 파키스탄과 중국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방과 중국 신장 간의 경계를 획정하는 국경 협정에 서명했다.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이 인도 영토인 카슈미르를 중국에 양도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협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인도는 인도령 카슈미르를 인도 연방 정부에 통합시키기 위한 조치를 강구했다. 이렇게 되자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이슬람 세력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 등이 주도한 이슬람 무장폭동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65년 8월 5일 시작된 전쟁은 9월 27일 양측이 유엔 안보리가 제시한 8월 5일의 전선으로 철수하고 휴전하는 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종료되었다. 그러나 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카슈미르 지위에 관한 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정전지역에서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했다. 타슈켄트 선언으로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종결되었지만, 그때까지 잠재되어 있던 파키스탄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1971년 12월 3일 세 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사주한 인도에 대해 서파키스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도군의 막강한 전력 앞에 파키스탄은 굴복하고 12월 17일 양측이 휴전을 수용하면서 사실상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이로 인해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독립이 승인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후에도 냉전해체, 극단적 원리주의 세력의 등장, 9·11 테러 등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으며 무력충돌과 핵무기 보유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영토·종교·이념 등 얽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2012년 들어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 카슈미르 지방의 지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계속되었다. 특히 통제선 부근에서 31건의 소규모 전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인도는 4월 19일 처음으로 사거리 5,000km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파키스탄을 간접적으로 위협했다. 파키스탄도 이에 맞서 약 3,000km 사거리를 가진 핵탄두미사일 실험을 실시해 양측의 긴장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013년에도 통제선 부근의 전투는 47회나 이어졌다. 이로 인해 양측 군인 1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1월 5일부터 15일까지 발생한 전투에서 양측군인 5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이 사망한 인도군의 목을 베는 잔혹행위를 하자 인도 총리는 양국의 관계를 심각하게 재평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1월 15일로 계획되어 있던 파키스탄인에 대한 새로운 인도 입국비자 시스템 도입 시점을 4월로 연기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카슈미르를 비롯해 다수의 국경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핏 보면 국경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영토분쟁으로 보이지만 실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분쟁, 원리주의 세력들이 합세한 이념분쟁, 양국 이외에 다수의 권력들이 가세한 국제분쟁이다. 분쟁 당사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과 관련 강대국들은 이 지역 분쟁의 심각성을 고려해 해결을 위한 노력과 중재에 임하고 있다. 분쟁의 완전한 해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지만 카슈미르를 비롯한 양국 분쟁지역에서의 무력충돌 완화는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