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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평양 왕국의 잔반 처리법 2015년 7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53

평양 왕국의 잔반 처리법

 

호화란 말은 한마디로 좋고 화려하다는 말이겠지만 거기다 방탕이란 말을 붙이면 의미가 달라진다. 방탕이라는 의미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계층에서 발생한 말이 아닌가 하는 사실을 현 북한 정권 내부의 낭비를 통해 또 한 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 경호원으로 일한 경력을 가진 한 탈북 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에도 김정일 근접 경호팀의 요원으로 김정일 주변에 숨겨진 비화를 아주 소상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많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지만 이야기 도중 거북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탈북 인사가 말했다. “자네 북에 있을 때 곰발바닥 요리를 먹어본 적 있나?”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북에선 산에서 혹 곰을 잡았다 해도 가죽과 발통은 무조건 나라에 바쳐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그런 귀한 요리를 어찌 글이나 쓰는 ‘선비 나부랭이’가 먹어볼 수 있을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곰발바닥도 앞발 뒷발 용도가 달라”

“곰발바닥도 말이야, 앞발과 뒷발의 용도가 다르다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뒷발보다 힘 더 쓰고 활동량이 많은 앞발에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 칼로리가 더 많다는 소리야.”, “그런가? 그래서?”, “전국에서 수거한 곰발바닥 중 크고 탄탄한 앞발만 수령의 식찬으로 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럼 뒷발은?”, “그건 방문한 외국 수반이거나 외교일꾼, 주변 측근들에게 돌아가지.” 이런 말을 하며 그 인사는 갑자기 킥킥거렸다. 듣고 나서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6·15남북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북에 갔던 일부 경호원들과 그때 낯을 익혔던 이 사람이 서울에서 잠깐 만나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북에 갔을 때 김정일 지시로 곰발바닥 요리를 대접받았던 경호원들이 만족해하며 아주 감개무량해 했다. 북한에서도 수령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요리를 대접받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놀려주었다. 왜냐고 물으니 뭘 그런 뒷발 요리나 먹고 좋아하냐며 퉁명스레 핀잔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연을 알려주고 나서야 서로 마주보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한다.

사실 그 정도의 소비는 물론 ‘하늘의 태양’으로 칭송해 마지않는 최고통치자임을 감안하고 보면 웃음으로 넘길 만큼 별로 탓할 게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말에 필자는 소스라치는 충격을 받았다.

현대판 ‘평양 궁궐’의 오찬이나 만찬, 수령의 한마디 지시로 이루어지는 각종 연회 등 여러 먹자판에서 남는 음식의 양은 엄청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북한은 나라 전체가 먹을 것이 없어 아사자가 속출하던 시기였다. 그런 어려운 때일수록 수령우상화 선전은 계속되었다. 아니 더 극성을 부렸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인민이 죽을 먹는데 내가 어찌 밥술을 들겠소!” 하며 장군님께서 하루 한 끼 죽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선전에 선전을 거듭했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중반과 말, 북한 전역에 퍼진 ‘줴기밥(주먹밥)과 쪽잠’에 관한 이야기는 김정일을 인민이 굶으면 함께 굶는 참다운 인민의 수령으로 칭송해 마지않는 중앙당 선전부의 선전이었다.

“그렇게 낭비하는 것 알면 충성도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궁중에서 연회로 인해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처리가 더더욱 사람의 격분을 솟구치게 했다. 놀랍지만 남은 산해진미들을 아무도 모르게 땅에 묻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짐승의 먹이도 아니고… “아니 왜?” 나도 모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하루 한 끼 죽도 못 먹어 비틀대는 주민들이 낭비에 대해 알면 충성도가 그만큼 떨어질테니 그렇지!” 호위국 인근 철망을 친 강변에 호위사령부의 1개 소대가 굴삭기 한 대를 가지고 연회에서 남은 음식들을 전부 땅에 묻었다고 했다. 말하는 사람은 쉽게 말했지만 그런 진실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충격이었다.

호위사령부 소속 식료공장에서는 100여 명의 여자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을 쌀알을 깨진 것 없이 알알이 골라낸다. 김 부자는 평생 황해남도 재령쌀만 먹고 살았다. 밥은 평양에서 짓지만 물까지 재령 벼를 키운 재령의 물을 가져다 재령볏짚을 태워 정성들여 지었다 한다. 북한에서 황해남도 재령 쌀은 찰지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렇지만 재령을 떠나 다른 고장의 물로 밥을 지으면 찰기가 떨어진다. 또 탄불이나 장작불보다 볏짚을 태워 밥을 지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기운이 없어 비실비실 쓰러지는 수백만의 빈곤자들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빈곤국에서 그 수령이란 권력자가 누리어 온 사치와 엄청난 낭비에 대해 다시 한 번 분노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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