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북한, 자본 뒷받침 없이 획기적 농업생산 어려워” 2015년 7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부장
“북한, 자본 뒷받침 없이 획기적 농업생산 어려워”
Q. 북한이 연간 필요로 하는 식량의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
A.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 세계식량기구(FAO)에서 북한에 실사를 나가요. 북한이 지정해주는 곳에 가서 그 해의 작황, 그리고 다음 해의 봄작물 작황에 대한 예측을 하거든요. 이를 종합해서 12월쯤 보고서를 냅니다. 지난해 말 발표에 의하면 북한이 2014년에 508만t 정도를 생산해서 올해 공급할 수 있고 부족분 30만t 정도는 수입해서 충당할 수 있다고 발표했거든요. 이 둘을 더하면 약 540만t이죠. 이걸 보통 한해 북한 식량의 최소소요량이라고 해요. 최소소요량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이 정도는 먹어야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은 식량수급의 균형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정상적인 소요량을 충족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정상적인 소요량이라는 것이 대체 얼마 정도 되어야 하는지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쉽게 중국과 비교해 보죠. 북한 인구가 중국 기준으로 연간 소비를 한다고 하면 1년에 870만t 정도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870만t에서 540만t을 빼면 330만t, 즉 중국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330만t 정도 부족하다는 건데요. 사실 중국은 이제 소비를 많이 하는 국가에 속해요. 그러니 꼭 중국 수준의 870만t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소요량에 도달하기 위해선 여전히 약 200여 만t 정도는 매년 부족하지 않을까 판단하는 거죠. 게다가 최소소요량이란 것도 모자란 사람이 없도록 완벽하게 배분이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 북한에선 배급제도가 무너진 상태지 않습니까. 그러니 돈 있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더 많은 식량을 구입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다 할 수 있죠. 수급 계층 간 불균형이 옛날보다 더 심해졌단 말입니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죠.
Q. 김정은 정권이 등장한 이후 2012년에 이른바 6·28 방침이라는 새로운 경제관리 방식이 등장했는데 북한 농업 부문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A. 6·28 방침에 여러 내용이 있지만 일단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 ‘개혁적’이라고 말하는 내용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국가가 생산자재를 시장가격에 맞춰 현금으로 보장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된 산출물을 나중에 국가와 협동농장이 일정한 배분율로 나눠 가져간다는 것이죠. 그런데 현금으로 생산자재를 준다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어요. 혹자들은 이를 개혁적 조치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왜냐하면 과거에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잘 돌아갔을 때는 국가가 생산자재, 그러니까 비료, 농약, 농기계, 에너지 이런 것들을 현물로 주고 해당되는 몫만큼 생산물을 수매했거든요. 국가와 협동농장이 생산물과 생산자재를 교환하는 형태였죠. 그런데 북한에서 산업 생산이 굉장히 저조해지고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무너지니까 국가가 생산자재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거에요. 확보를 못하니 이젠 돈으로 주겠다, 돈으로 주면 시장에서 직접 구입해서 농업생산에 투입해라, 이렇게 된 거죠. 한 마디로 말하면 이제 국가가 생산자재를 직접 현물로 보장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란 말입니다. 또 현금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에도 결정적인 문제가 있어요. 협동농장에서 생산자재를 살 몫을 현금으로 받아 놓은 상태라고 해봐요. 아무 때나 자재를 사는 게 아니거든요. 생산자재라는 것이 저마다 필요한 시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비료라고 해봅시다. 비료가 논밭에 투입되어야 할 시기에 협동농장에선 일제히 시장에 나와서 비료를 구입하려고 할 거란 말이죠. 그런데 시장에 나와 있는 비료의 양은 일정하잖아요. 결국 비료값이 천정부지로 뛰게 된다는 것이죠. 국가가 현금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은 결국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북한 정부가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죠. 말로는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보장이 안 되는 것이고요. 북한 스스로 재정파탄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개혁적인 내용이 될 수가 없죠. 면피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6·28 방침에는 작업분조를 크게 축소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거든요. 작업분조를 과거에는 15~20명 정도의 노동력으로 구성했는데 이를 3~5명으로 줄이겠다는 겁니다. 이건 일정 부분 개혁적인 내용이라고 봐요. 실제로 작업분조의 규모가 그렇게 작아진다면 개별경영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죠. 의사결정도 빨라지고 체감 인센티브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15~20명이 나눠 가질 때보다 3~5명이 나눠 가지는 게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단 거죠. 당연히 더 열심히 일하게 되겠죠. 이게 북한의 전 농업 부문에 적용되고 있다면 생산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은 되는데 아직까지는 시범적인 수준에서 진행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2012년 이후 농업생산성은 계속 증가해오고 있지만 사실 미약한 수준이라, 그것이 개혁의 효과인지 그렇지 않고 과거의 생산성을 회복하는 과정인지 현재까지의 데이터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Q. 6·28 방침 이후에 지난해에는 공장, 기업, 농업 부문에서 독립채산제를 확대한다는 이른바 5·30조치를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A. 그렇죠. 6·28방침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데요. 사실 5·30조치의 내용은 매우 획기적이라고 봐요. 5·30조치가 담고 있는 내용을 보면 농업 부문에서는 경영권을 농장의 분조장이나 개별경영체에 준다고 했거든요. 분권화 한 것이죠. 게다가 중요한 개혁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노동력 1인당 0.3ha의 농지를 배분해 준다고 했어요. 지금 북한의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이 1ha 정도 되거든요. 농가의 노동력 보유는 1.5~2명인데 보통 부부가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1인당 0.3ha를 준다고 하면 2명일 경우에 농가 1호당 0.6ha를 개별경영으로 바꾸고 자기 책임 아래 경영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0.4ha는 집단적 경영체제 그대로 있고, 나머지 0.6ha는 농가에서 직접 경영을 하게 되는 거죠.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 북한 농업의 60%가 개별경영화 되는 겁니다. 대단히 개혁적인 것이죠. 이건 중국의 1970년대 말 생산책임제 개혁을 시작할 당시 정책보다 훨씬 더 진전된 방식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발효된 5·30조치를 올해부터 적용한다는 단서를 내걸었기 때문에 올해 생산부터 시행된다는 건데, 만약 올해에 이런 개혁적 조치가 실제로 실시되면 생산성은 반드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집단경영이 아니라 개별경영이 60% 수준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죠. 그래서 올해 작황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에요. 올해 북한이 농업 부문에서 생산성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 데이터가 나오면 그걸 가지고 북한 농촌 부문에서 어느 정도 개혁이 진전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Q. FAO 자료를 보면 2010년 450만t에 불과한 북한 식량생산량이 2014년에는 503만t까지 증가해 최근 4년간 11.8%나 늘어난 수치를 보이고 있고 특히 2012~2014년 사이에는 14%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몇 년간 가뭄 등 기상조건이 매우 열악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있는데?
A. 일정 부분 그럴 수도 있겠죠. 개혁적 조치가 농촌에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시범단위가 곳곳에 있을 것이고, 거기서 생산성 증가가 나올 수도 있었겠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2000년대 초반에 비해서 2010년 이후로 넘어오면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게 있어요. 북한이 외부로부터 화학비료 수입을 크게 증가시켰거든요. 여전히 북한의 공급량이 농촌에서 필요로 하는 화학비료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 많이 늘어났어요. 그러니 2010년대에 들어서 북한의 농업생산성이 증가한 것을 단순히 개혁적 조치 때문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는 거죠. 장기적으로 보면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 뚝 떨어졌던 농업 생산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개혁의 효과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지금의 데이터로는 무리가 있어요.
Q. 북한 농업 부문에서의 개혁, 어떻게 전망하는지?
A. 앞서 말씀드린 중국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중국의 생산책임제 개혁이라는 것이 정확히 1978년에 변경지역부터 시작되었거든요. 집단경영 체제에서 개별경영 체제로 넘어오는 과정이고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더 많이 주는 식으로 변화한 것이죠. 굉장히 짧은 기간 안에 이뤄집니다. 불과 6년 만에 전 국토에 급속히 완성되죠. 그 기간 동안 중국의 농업생산성 증가를 보면 약 50%의 증산이 일어나거든요. 농촌 부문에서 제대로 된 개혁이라 한다면 중국에 버금가는 속도로 이뤄져야 하거든요. 개혁이라는 것이 그렇게 강력하게 몰아치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북한이 5·30 조치에서 표방하고 있는 개혁이라는 것이 중국의 생산책임제 개혁과 비견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또 별개의 이야기죠. 생산책임제에 대한 제도나 법률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합니다. 생산기반이 잘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산림이 복구되거나, 화학비료, 에너지, 비닐, 종자 같은 농업 생산요소들이 잘 공급되는 상황에서 생산책임제 개혁을 한다면 개혁의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는데, 북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자본이 없잖아요. 생산요소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 생산기반도 피폐해져 있는 상태에서 복구도 안 되고요. 이런 상태에서는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북한에서 제대로 된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정부의 의지, 즉 농촌 부문의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정책적인 부분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물적 토대, 즉 자본도 제대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죠.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농업 부문에서 제대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느냐, 이건 여전히 불투명하잖아요. 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봤을 땐 북한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농촌 부문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드라이브를 걸더라도 중국에서 드러난 것 같은 결과는 나오기 힘들다고 봐요.
Q. 가뭄이 심한 상황입니다. 곡창지대인 황해도 지역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A. 우선 봄 가뭄이 있었느냐 하는 게 중요해요. 모내기 때문이죠. 전체적으로는 겨울부터 이듬해 6월 중순까지 비가 충분히 와야 하는데 2013년부터 올해까지 가뭄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어요. 지금 우리 농업도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상태죠. 그런데 가뭄이 심한 상황은 북한 입장에선 큰 문제에요. 왜냐하면 농업생산 기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수리관개 시설인데 북한 수리관개 시설이 정말 열악하거든요. 자본이 있어야 이런 시설도 꾸준히 개선해 나갈텐데 1970년대 말 이후부터는 제대로 개선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단 말이죠. 더구나 수리관개 시스템이 우리와 달라요. 남한은 강 상류에 댐으로 막아서 물을 보유하고 있다가 아래로 흘려보내 저수지에 받아서 활용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전력이 필요 없죠. 그런데 분단 이후 북한은 당시 전력이 비교적 풍부한 상황에서 수리관개 시스템을 전기를 이용한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양수장 개념으로 전력을 이용해 아래에서 퍼 올려 높은 곳으로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겁니다. 알다시피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힘들게 되면서 양수 시스템도 가동하기 어려워졌고요. 더구나 수리관개 시설이 피폐한 데다 자본 부족으로 개보수도 이뤄지지 않으니 문제가 큰 상황이죠. 북한은 가뭄, 홍수 같은 자연적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 농업생산 구조입니다. 우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 할 수 있죠. 또 황해도, 평안도, 북한에선 ‘벌방지대’ 즉 평야지대라고 하는데 주로 논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여기에 가뭄이 심한 상황이니 가을 작황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봄 작황이라 해봤자 보리, 감자 같은 작물일텐데 생산량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약 30만~50만t 정도 되기 때문에 가뭄이 봄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실제 피해 폭은 크지 않을 텐데, 가을 작황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타격이 크죠. 가을 작황량이 450만t 이상되니까요. 지금이라도 장마가 들고 비가 오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가뭄이 조금 더 지속되어서 7월 초까지 이어진다면 문제가 조금 심각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동훈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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