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기상예보? 거기도 여기도… 2015년 8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3
기상예보? 거기도 여기도…
기상예보에 대해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처벌받지 않는 거짓말’이다. 기상예보가 틀렸다고 관련자가 경질됐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예보가 틀렸으면 그냥 그러려니 여긴다. 예보가 딱 들어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 좀 양보해 봐준다면 비슷하게 맞았으면 맞는 것으로 친다. 그래도 북에 비하면 남쪽 기상예보가 더 잘 맞는다. 물론 비슷하게 맞는 경우지만 말이다. 기상과학 수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 차이가 있는지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남한이 위성을 여럿 운용하고 관련 분야 국제교류가 활발할 것만은 틀림없다. 이에 비해 북한은 실용위성이 한 개도 없고 다른 나라 위성관측 자료를 참고하는 수준이다.
北 기상관측 기관, 중앙 및 도·시·군 단위로 세분화
북한의 기상관측 기관은 중앙과 도·시·군 단위로 세분화되어 있다. 시·군 기상관측소는 실제적인 말단 관측기관이다. 시·군 범위가 크거나 지형이 복잡한 경우에는 시·군 기상관측소가 관할하는 극소규모 기상관측 기구를 협동농장이나 산업단지에 둔다.
시·군 기상관측소는 해당지역 날씨를 실시간 체크하여 도 기상관측소에 보고한다. 도에선 각 시·군에서 올라오는 기상정보를 종합하며 이를 다시 중앙에 전달한다. 중앙은 전국에서 받은 정보와 위성자료 등을 종합분석하고 이를 다시 각 도에 전한다. 도는 같은 방식으로 시·군에 전한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중앙은 <조선중앙방송>에, 도는 도 방송에, 시·군은 시·군 방송에 기상예보 자료를 제공한다.
중앙관측기관 예보는 라디오와 TV방송으로 하고 도는 라디오, 시와 군은 유선방송으로 한다. 라디오는 남한지역 날씨도 알리는데, 정세에 따라 했다가 말았다가 한다. 단, 대남용인 <평양방송>은 “다음은 공화국 남반부지역 날씨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늘 했었다.
북한 기상관측 시스템 구조는 잘 되어있지 않나 싶다. 문제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직접 겪어본 일인데 어느 군 기상관측소에 아는 지인이 있었다. 그는 자기 직업이 괜찮은 직업이라며 애착을 갖고 있었다. 편안하고 욕먹을 일이 없고 뙈기밭 농사를 지을 시간이 많아 좋다는 거였다. 관측소 인원이 4명인데 한명은 소장이고 3명이 교대근무를 섰다. 3교대를 하며 근무에 나가면 실시간으로 기상변화를 체크해야 하는데 형식적이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놀겠으면 놀고 하다가 교대할 무렵이면 자료양식에 생각나는 대로 기재해 넘기거나 도에 보고했다.
특히 밤교대가 한심했다. 낮에는 뙈기밭 농사를 하거나 볼일을 보다가 저녁에 출근한다. 교대인수를 하고나면 대충 관측기구들을 돌아보고 잠을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게 되면 한 번씩 돌아보는 정도였다. 도에서 특별한 기상상황이 예견된다고 전화통보가 올 때만 긴장하여 일했다. 도 기상관측소도 시·군 관측소보다 별로 나은 것 없이 일을 건성건성 해버렸다. 그나마 도 방송 기상예보가 제일 잘 맞았던 것 같다. 중앙방송 기상예보는 범위가 너무 커서 시·군별로 맞을 수 없었다.
“내게 대놓고 거짓말 하는 곳은 기상관측소 뿐”
기상예보가 하도 많이 틀리다보니 이런 말도 돌았다. 평양의 어느 중학교에 중앙방송 기상캐스터의 아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학급 친구들로부터 “야, 너의 아버진 왜 자꾸 거짓말 하니! 오늘 날씨도 개일 거라더니 비오잖아.”하는 핀잔을 늘 듣고 지내야 했다는 것이다. 기상예보가 얼마나 틀렸으면 김일성이 생전에 “우리나라에서 나에게 대놓고 거짓말 하는 곳은 기상관측소밖에 없다.”며 웃었다는 말도 있었다. 서슬 퍼런 독재자도 어쩌지 못한 기상관측소의 거짓말이다.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고, 회의에서 졸았다고 기관총으로 숙청하는 북한인데 기상예보는 거짓말이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북에서 살면서 하도 거짓예보에 익숙해져 그런지 남한에 와서도 기상예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더구나 북한처럼 도 방송이나 시·군 방송이 전하는 기상예보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서울에만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대신 스마트폰이 지역날씨를 알려주니 편리하다. 실시간 업데이트도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도 잘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시 노원구에 소나기가 온다고 표시돼도 구름만 짙게 끼는 정도다. 반대로 소나기는 강북구나 중랑구에 내린다. 그래도 그 정도면 맞은 거나 같다고 봐준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뜨는 기상예보를 좀처럼 업데이트 하지 않는다. 부산에 가든 대전에 가든 그 지역날씨로 변경시키는 것이 번거롭다. 어차피 잘 맞지도 않는 것을… 나에겐 북한에서처럼 기상예보보다는 오히려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감을 잡는 데 익숙하다. 내 느낌에 비가 온다면 오고, 안 온다면 안 오는 날이 더 많은 걸 어쩌겠는가. 아마도 기상과학이 조물주를 찾아내기 전엔 천지조화를 꼭 맞게 예측할 수 없을 거라는 다소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