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9월 1일

통통 인터뷰 | 당신의 통일한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2015년 9월호

통통 인터뷰 | 전병길 통일과 나눔 사무국장

당신의 통일한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탈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만큼 체제 대결에서 벗어난 통일논의를 하고 있는 걸까.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의 속도를 반영하고 있을까.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이 통일과의 거리감만 만드는 게 아닐까. 통일한국에도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전병길 사무국장의 통일 모험은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정치·경제적 관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통일문제를 마케팅, 브랜딩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동안의 시각에서 벗어나 제한된 상상력의 사슬을 풀기로 했다.

통일한국 브랜딩, 발단은 진짜 북으로 간 초코파이

그 발단은 초코파이였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에 등장한 초코파이는 남북 병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북한 병사의 마음을 녹인 달콤한 무엇이었다. 몇 년 후,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2004년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문을 열면서 북측 근로자들은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받았다. 지금은 북한당국이 유입통제에 들어갔을 만큼 초코파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손에 쥐어진 과자 하나를 들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情)? 마음껏 먹고 싶다는 욕심? 자유에 대한 갈증? 체제에 대한 의구심? 분명히 영화 속 북한 병사가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0년 영화 속 판문점의 모습이 2004년 개성에서 실제로 나타났다는 점은 그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통일한국에도 소프트 파워를 적용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여겨졌다.

전병길 사무국장은 우선 북한을 기회의 시장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 시장화를 선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그는 북한 실정에 맞게 저소득층(BOP) 시장을 공략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6년 방글라데시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식품회사 다논(Danone)의 투자를 떠올렸다. 다논은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생산되는 우유로 비타민 등 필수 성분을 강화한 요구르트를 만들어 저가에 판매했다. 이는 고용을 창출하고 주민들의 영양부족을 채워줬다. 여기서 생긴 수익금은 다시 재투자하여 또 다른 생산 공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이를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죠. 기존 자본주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북한에 맞는, 북한 사람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고 접근한다면 새로운 가치들이 만들어질 거예요.”

북한의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도시마케팅을 고민하게 됐다. 독일 드레스덴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로 장식된 드레스덴은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처참히 무너졌다. 통일독일은 과거의 찬란한 유산을 복원하려는 도시마케팅을 시도했고 산업시설을 유치해 현재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창조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저는 드레스덴의 가능성을 개성에서 봤어요. 정치·경제·국제무역의 중심지였던 개성은 전통과 문화가 녹아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남북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시가 되었죠. 차후 개성의 도시마케팅을 위해서는 고려왕조의 차별적 콘텐츠를 발굴해나가고 개성공단의 업그레이드 된 브랜드화가 필요해요. 비단 개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충분히 활용한 도시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이때 한국의 고성장 도시개발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반추하여 조화로운 도시로 만들려는 고민도 있어야겠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넛지효과, 통일에도!

통일한국이 매력적인 국가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통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통일한국을 설계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국민들이 색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다. 그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영화는 허구였지만 관객들을 중심으로 형제가 화해하는 장소 인근에 기념탑을 만들자는 청원운동이 일었다. 영화 한 편이 의도치 않게 국민들의 행동을 유도해낸, 일종의 넛지효과였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50년 이상을 진행해 온 통일교육보다 효과가 대단했다고 봅니다. 그동안 통일교육은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던 반면,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아가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6·25전쟁에 대한 지식도 쌓아갔죠. 결국 통일교육도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여 스스로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사회의 통일 개념은 점점 변화하고 있다. 과거 민족을 앞세우던 통일의 당위성은 ‘통일대박’이라는 화두처럼 경제적 요소에 더 맞춰져 흐릿해지고 있다. 그가 그리는 통일한국의 개념도 조금 새로웠다. 더 이상 민족의 동질성만을 내세우기에는 우리 사회가 점차 다문화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시골마을을 방문했는데 필리핀 새댁이 아이를 업고 장을 보고 있더라구요. 이 아이들은 자라서 분단, 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그 아이들에게 겨레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는 고려를 롤모델 삼아 통일한국이 모자이크 코리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 과정에서 인구 10% 내외가 외국인이었을 만큼 고려는 다민족 국가였다고 한다. 고려가 다문화, 다민족을 포용하는 개방정책을 펼쳤듯이 우리도 다이나믹했던 고려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나의 민족, 원코리아도 좋지만 결국 우리는 모자이크 코리아로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통일한국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와 견해는 <통일한국 브랜딩>, <공동관람구역> 등의 책으로 출간됐다. 주류 북한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터무니 없다는 비평도 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좋았다. 오히려 쉽고 재밌게 통일을 생각했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현재 ‘통일과 나눔’ 재단에서 통일운동을 위한 기금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기금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과 통일을 위한 단체에 지원될 예정이다. 지난 5월 설립된 재단의 모금액은 60억원을 웃돌고 있고, 후원자 수는 5만명을 돌파해 추석 때까지 10만명의 후원자를 모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무엇보다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에 가능했다. “차후 통일한국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이에요. 요즘은 웬만한 글로벌 기업이 여느 나라보다 영향력이 큰 세상이니까요. 우리나라에도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있는데 기업의 사회공헌이 통일 분야에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다소 낯설 수도 있다. 발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의 장면들이 입증하듯이 언젠가 당신이 한 작은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옭아맸던 빗장을 풀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통일을 그려보자. 자, 당신의 통일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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