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 모든 어린이가 함께 … 분리주의 아닌 통합교육으로 2015년 9월호
통일교육,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4
모든 어린이가 함께 분리주의 아닌 통합교육으로
북아일랜드 분쟁기 동안의 평화를 향한 교육적 고투는 상호이해교육(EMU)과 통합 교육운동으로 모아진다. 종파학교의 벽을 넘어 아이들을 서로 만나게 하면 미래사회의 같은 시민으로서 편견이 극복되고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EMU와 함께 통합교육 운동은 사회적 폭력의 근원인 종파분리주의를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모든 아이 들을 한 학교에서 함께 배우게 하여 분열의 씨앗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는 비폭력적 평화교육을 지향한다. 실제로 벨파스트평화협정에서는 통합교육의 평화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른 종파학교에 다니 고 있다. 가톨릭 자녀들은 지역의 가톨릭종파학교(GMS)에 다니는 반면 프로테스탄트 자녀들은 개신교종파학교인 일반공립학교(CS)에 출석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교육통계 (2004~2005)를 보면, 개신교 가정의 93% 아이들이 일반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가톨릭 가정의 91% 아이들은 가톨릭학교에 다니고 있다. 교사 양성도 가톨릭학교와 개신
교 일반공립학교가 따로 실시한다. 이렇듯 북아일랜드 학교는 지역사회 분단의 상징으로 거주지를 경계기준으로 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분단이 일상화된 교육적 폭력으로 귀결되는 구조다.
‘분단의 일상화, 어려서부터 극복 못하면 미래는 없다’
1970년대 사상자가 급증하고 폭력적 대치로 인한 피해에 전 사회가 병들어 아이들도 사회적 적대화의 도구로 변해가자 지역의 학부모들이 모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책임이 없는 아이들이 왜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지, 왜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끼리는 친구가 못 되며 왜 서로를 증오해야 하는지, 왜 알지도 못하면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어려서부터 극복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 하에 가톨릭과 개신교 어린 아이들이 한 학교에서 함께 섞여 놀며 공부하게 하자는, 이른바 ACT 통합학교 설립운동이 공론화되었다.
1976년 ACT 보고서를 통해 통합학교란 “종교적, 도덕적 교육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 학습의 공통성을 증진하는 교육과정”이라고 정의하였고 이것은 1978년 북아일랜드 교육령에 『던리스법안』으로 반영되었다. 하지만 학교 설립에 이르기까지 종파학교의 저항과 엘리트교육을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무관심으로 1981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라간(Lagan)통합중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미 영국의 중등교육제도가 무시험 종합중등학교로 90%이상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11세 시험으로 인문계와 실업계로의 진입을 나누는 조기선발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차별적 조기선별이 아니라 모든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섞여 함께 공부한다는 이념을 지향하는 통합교육은 종파적 분리교육과 능력별 분리교육에 반대하는 진보적 교육이념으로 비쳐졌다. 그러다보니 인문계 위주의 진학이 선호되는 지역사회 환경에서 통합학교는 뒤쳐진 아이들이 가는 학교, 진보적 중산층 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2013년 3월 북아일랜드통합교육협회(NICIE) 파울라 국장의 도움으로 필자는 카리크퍼거스에 위치한 울리디아(Ulidia)통합중등학교를 견학하였다. 울리디아는 1995년에 개교 준비를 하여 1997년 마침내 정부인가를 받아내 성공적으로 안착한 통합학교다. 보수적인 개신교지역으로 15%만이 가톨릭계인 이 지역에 통합학교를 신설하려는 데 대한 지역주민의 저항이 매우 컸다고 한다. 1995년 첫 번째 학교인가가 반려되고 1996년 두 번째도 거부되면서 톰 페니쿡이라는 학부모가 국가보조 없이 학교설립을 진행하자고 독려하였다. 이 과정에서 NICIE가 통합교육기금을 지원하였고 준비위는 통합기준인 소수종파의 30% 가톨릭학생을 채워 1997년 가을에 63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울리디아, 새로운 통합의 실험을 시작하다
종파 간 균형을 맞추고 11세 선발고사를 치르지 않는 중등통합학교로 울리디아가 개교하게 되자 분리주의자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학교도서관이 폭격으로 부서졌고 학생들도 수시로 공격을 받았으며 지역민의 반대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진 마틴 교장을 비롯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탄탄한 연대적 노력으로 이제 울리디아는 600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대형 통합중등학교로 성장하였으며 2012학년도 최우수 학업성취성과를 내기도 했다.
학교 측의 배려로 필자는 9학년(14세) 인간발달과 상호이해 수업을 참관하였다. 샤론 교사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왜 이 학교를 택했나?’, ‘내가 사는 지역에서 종파 간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구교와 신교는 무슨 차이인가?’, ‘왜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서로 싸우나?’, ‘학교 이름인 울리디아는 무슨 뜻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활발하게 대답했다. 북아일랜드의 분쟁 이야기로 돌아와서는 교사 자신이 겪은 가족사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이어나갔다. 가톨릭 집안의 아버지가 영국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서 생긴 가족갈등 해프닝부터 교도관이었던 아버지가 가족을 피신시키며 살았던 이야기, 그리고 교도관 공격의 일환으로 집에 불을 내어 아버지가 화상을 입었던 사건 등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니 학생들이 쥐 죽은 듯 몰입했다. 샤론 교사의 ‘나의 아버지는 가해자였는가 피해자였는가?’라는 질문은 북아일랜드의 풀 수 없는 질문이다. 일반 종파학교에서는 진영논리에 따라 한 대답만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북아일랜드 역사의 피해자고 가해자이기 때문에 ‘통합학교가 답이다’라는 샤론 교사의 말이 평화교육의 지향성을 암시한다.
북아일랜드에 있어서 평화교육은 무엇인가? 일상의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해 왜 그러한 폭력이 일어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평화교육의 이름으로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통합학교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강순원 / 한신대 심리아동학부 교수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