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기성세대와 신세대, 공감의 접점을 찾아라! 2015년 9월호
광복 70주년 기념 좌담 ‘통일 한반도를 향해!’
기성세대와 신세대, 공감의 접점을 찾아라!
<편집자주>
분단사회는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폭력적으로 대치하는 것이 일상화된 구조를 말한다. 분단사회가 위험한 것은 상호간의 편견과 무지가 심화되는 가운데 비이성적 폭력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이 위협 받고 공동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가 겪어 온 지난 70년 분단의 세월이 폭력과 전쟁,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화해와 평화, 이해와 공존을 추구하는 화합의 세월로 맞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폐쇄적 분단구조 속의 갈등을 현명하게 극복해야 하며 그 첫걸음은 바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이른바 ‘장벽을 허무는 대화’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광복 70년과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한국>이 우리 사회 다양한 세대 구성원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의 진솔한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교류와 소통 새로운 만남 열어갈 원동력”
김 귀 옥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사회 곳곳에서 통일이라는 화두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오늘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별로 한 분씩 모셨는데요. 각자의 세대에서 통일이라는 말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이야기 해 볼까요?
이 두 형 저는 반공 중에서도 반공, 이념적으로 보면 극우적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고요. 일례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중고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학교에서 학생회가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이었고, 학생회장 명칭이 연대장이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교련 검열이었는데 교련 검열이 끝나지 않으면 1년 내내 재검을 받기도 했죠. 엄청 힘들었어요. 학교마다 교련 선생님이 대위나 소령 계급장을 달고 상주해 계셨죠. 완전 군사체제였어요.
이런 상태에서 학창 시절을 마쳤지만 당시에는 여러 불만이나 이견 같은 것에 대해서 표출을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던 시대입니다. 북한을 포함해 통일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저희 세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변해 이야기 해보면 통일은 무조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입장인 것이죠. ‘통일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반드시 되어야지.’ 이런 생각이 대부분이죠. 저는 5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 세대는 그 안에서 이념적으로 생각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에 대해선 무조건적 찬성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김 현 주 저는 10대 때부터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였어요. 그 당시가 권위주의 정부 시기였고 그래서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통일이라는 이야기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의문을 갖지 않았어요. 누가 ‘통일, 필요한가?’ 물으면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죠.
대학에 들어가고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오면서 사실 통일 문제는 사람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당장의 생활 문제가 더 중요해졌으니까요. 정부가 통일 문제 이야기를 하면 정치적인 담론일 뿐 내 문제는 아니고,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이질감을 느꼈다고 해야겠죠. 요새도 사실 통일이라는 이슈로 방송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요. ‘어차피 똑같은 이야기, 들어서 뭐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저희 세대뿐만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한테도 물어보면 20대 친구들 역시 통일에 큰 관심이 없더라고요. 많은 학생들이 이야기 하듯 요새 젊은 세대의 제일 큰 관심사는 취업이죠. 그래서 말합니다. ‘통일이 필요해. 왜? 너희들 취업에 도움이 돼.’ 이렇게 이야기 하면 눈이 반짝반짝 하죠. 통일 문제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연관시켜 말을 해야지 납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변 준 희 ‘통일’이란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로 느끼는 것 같아요.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들어 왔지만, 통일이 지금 내 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30대는 특히 불확실한 미래와 선택에 대한 고민, 그로 인한 불안감이 많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20대에는 젊음이라는 특권 속에서 다양한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갖기도 하고 무모한 도전도 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 속에서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진로 변경이나 이직에 대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30대는 또한 배우자 선택과 결혼이라는 부담스러운 과제를 재촉 받는 시기이기도 해요. 평균 결혼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30대이지만 미혼인 남녀가 많은 사회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 세대는 20대 초중반에 주로 결혼을 했으니 30대가 되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자녀가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의 30대는 ‘빨리 결혼해야지!’라는 잔소리에 시달려야 하고, 결혼이 늦어지면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결혼에 성공했다 해도 주택 문제나 출산과 육아 등과 관련한 고민거리들을 연이어 풀어나가야 해요.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자신이 당면한 현실과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통일 논의들은 다소 거리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죠.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통일? 해야지.’, ‘통일되면? 더 좋아지겠지.’ 정도의 수준이지 더 이상 깊이 있는 화두로써 고민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고 형 욱 통일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우선 저희 20대에게 있어 가장 큰 화두는 바로 통일의 당위성과 관련한 것인데요. 저도 어렸을 적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 기억이 나지만 지금에 와서 누가 제게 ‘당신의 소원은 통일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글쎄요, 아마도 취직이라고 답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제 20대들은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적인 생각보다는 통일에 대한 정말 다양한 의견들을 갖고 있을 수 있죠.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의 상황에 맞춰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제는 20대에게 통일이라는 화두를 던지려고 한다면 그것의 당위적 측면이나 이산가족과 같은 감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왜 통일을 절실하게 느껴야 하고 이룩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여전히 통일의 당위성 부분에 더 무게를 두고 젊은 세대들에게 설파하려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아요. 이러니 ‘통일은 당연히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굳이 우리가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죠. 원래 그다지 관심 없었던 우리 세대 입장에선 통일이라는 말이 더 멀어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김 귀 옥 ‘북한이라는 존재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세대별로 관점의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 형 욱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어보면 사실 저는 그렇게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제 머릿속에 담겨진 북한, 북한 주민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해 보면 우리보다 못 살고, 억압받고 있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죠. 그래도 학교에서 강의나 여러 다른 기회를 통해서 접한 자료로 보면 사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아니겠어요. 체제가 아무리 폭압적이라 해도 그들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나름대로 자신들의 반발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우리와 비슷한 감정들을 갖고 살고 있겠죠.
안타까운 것은 사실 그런 점에 대해선 우리가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미디어를 통해 보는 북한이나 북한 주민들의 삶이라는 것은 못 살고, 억압받고, 힘든 모습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양하고 폭넓게 북한이라는 존재를 접해보지 못했으니 우리의 북한 인식이라는 것이 이 정도의 생각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겁니다. 여기서 생각이 멈추는 것 같아요.
김 현 주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딱 세 가지 단어로 북한 주민에 대해 정리하더라고요.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불쌍하다.’ 이렇게요.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요새 학생들도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던 우리 세대와 마찬가지의 인식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죠. ‘그동안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고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북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공개되어 잘 알고 있음에도 개인별로 인식하는 북한, 북한 주민의 모습은 우리 세대가 생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바뀌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통일을 지향해 나가고자 한다면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며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북한 주민에 대해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불쌍하다.’는 이미지는 우리가 북한 주민보다 월등하고, 북한 주민은 우리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통일을 한다면 사회통합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어요. 북한 주민은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지 동등한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낳을 수 있고 이는 통일 과정에서 심리적 거부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아요.
변 준 희 사람마다 북한이라는 국가, 북한 주민에 대한 감정적 부분은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일반 주민에 대해서는 점점 친근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의 모습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 생각해요. 북한 주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많이 확산된 반면, 북한 정권이라든지 정치적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거부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에 적응해 가는 북한 주민과 달리 북한 정권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거예요.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30년 전 과거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과거의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 두 형 제가 처음 북한 사람을 만나 본 것은 2000년도에 육로를 통해서 금강산 들어갈 때 거기 계신 여성분이었는데, 우리나라 계급으로 말하면 대위 계급을 달고 있는 여군이었어요. 사실 정말 두려웠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단 한 마디도 안 하는 거예요. 제 얼굴만 딱 쳐다보고 사진과 대조하고선 아무 말도 없었죠. 그 때 솔직히 ‘와, 이거 내가 여기서 넘어갔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또 접경지에 가면 북한 군인들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안내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곳에서 각 차마다 올라와 점검을 하는데 제가 인솔자니 앞줄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군인들이 차 안으로 들어오길래 인사를 했더니 이번에도 또 무표정 한 거예요. 역시 굉장히 무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는 상당히 경직된 자세로 일을 처리하고 100m 정도를 절도 있게 걸어내려가더니 그 후에는 옆 동료와 서로 밀치고 장난치고 그러면서 가는 거예요. 단순하고 작은 경험이었지만 그 때 충격을 받았어요.
‘겉모습이나 형태는 달라도 사람이라는 것이 내면적인 부분은 같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꼈죠.
북한이탈주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 귀 옥 최근 북한이탈주민들이 매스컴을 통해 북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아 예전보다 친근한 느낌이 많은데,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미지, 어떻게 생각하나요?
변 준 희 제가 본 북한이탈주민들은 솔직히 남한 출신인지 북한 출신인지 모를 정도로 세련되고 멋진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지켜보면 생활력과 적응력이 정말 뛰어나세요. 첨단기기나 SNS 같은 매체를 능숙하게 잘 다루시기도 하고요. 정이 많아요. 저보다도 훨씬 경제력이 좋았던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적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세요.
통일교육강사 활동을 하면서도 다양한 북한이탈주민을 접할 수 있었는데 사실 각각의 분들이 하는 말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북한 내에 있는 지하교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은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 그런 것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또 다른 분은 지하교회와 관련한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요. 남한에서 지원한 쌀에 대해서도 말을 들어보면 ‘그런 쌀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남한에서 온 쌀이 장마당에서 팔리는 것을 봤고 호남쌀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는데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북한 안에서도 정보 교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북한과 관련한 소식들을 보면 대개 정치·안보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요소가 많잖아요. 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일정부분 긍정적으로 바꿔준 매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강의를 나갈 때 남한 출신 교사와 북한 출신 교사가 같이 가거든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강사님을 가리키며 북한에서 왔다는 소개를 하면 학교 현장에선 놀라는 학생들이 매우 많았어요. 북한에서 온 분을 자신의 눈으로 처음 본 거죠. 그런데 그 분이 낙후되고 촌스럽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세련되고 멋있거든요. ‘어? 북한 사람인데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인식이 자연스레 드는 겁니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북한 하면 부정적 인식이 많이 들지만 그래도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을 접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런 인식이 상쇄되는 경우를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우리가 북한이탈주민들과 북한 주민은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의 체제를 부정하고 나온 사람들이죠. 우리나라에 정착해 생존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가치와 지향하는 바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러나 북한 주민의 생각과 북한이탈주민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북한 주민의 생각과 남한 주민의 생각은 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 현 주 저는 북한이탈주민을 직접 만나고 교류해 본 경험은 없고 주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선 요즘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에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보면 마약을 하거나 사기에 연루되거나 형사사건을 저지르는 등 북한이탈주민들의 제대로 된 정착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들이 더 많이 노출되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어렵게 탈출하여 정착한 분들을 간단한 교육만 받게 하고 정착금 주면서 적응하며 살아나가라고 하는 것이 조금 위험한 것 같기도 하고, 정책적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죠.
이 두 형 예전에는 북한을 탈출하여 동남아라든지 이런 제3국을 거쳐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북한이탈 학생들을 보면 보통 2년 정도의 학업 시간차가 있었는데 요새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돈만 있으면 정말 빨리 들어오더라고요. 가장 빨리 입국하는 학생을 보면 북한을 탈출해 3일 만에 입국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북한이탈주민이라 하면 우리 국민인데, 그 분들이 여기서 정착했다 하더라도 다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의 문제점에 빠져 고통을 겪는 분들도 많고요.
일단 살던 환경이 너무 달라져 문화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에서 오는 갈등이 있습니다. 제가 북한이탈주민을 만나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왜 병원비를 냈음에도 약국에 가서 조제비를 따로 또 내야 하느냐.’는 거예요. 북한에 있을 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삶의 문제로 다가와 혼란을 겪는 것이죠. 학교 현장에서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담배 문제가 대표적인데, 북한이탈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가 북한에 있을 때는 흡연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해요. 우리는 전혀 아니잖아요. 북한에서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죠.
고 형 욱 제 또래 북한이탈주민 대학생을 만났는데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호칭을 매우 언짢게 생각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만약에 네덜란드 사람이 귀화를 해서 대한민국 사람이 되면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 계속 그 이전의 국적을 강조하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면서 그런데 왜 유독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선 계속해서 그런 호칭을 붙여서 마치 북한에서 적응하지 못해 떨어져 나온 느낌을 받게 하느냐는 거에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호칭이 불편하다는 거죠.
저는 북한이탈주민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너무나 삶이 힘들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탈출해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분들도 많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죠. 그냥 단순히 그 체제가 싫어서 나왔고, 탈북해 나오는 과정에서 그다지 고생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평소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이 사라지긴 했죠.
북한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많은 편인데,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에서의 삶이나 환경 등 여러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뢰성 측면에서 ‘이 말이 맞나?’ 고민이 될 만큼 윤색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북한학 전공자라 그분들을 그나마 만날 기회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학생들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분이라도 만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한정된 만남과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한정된 정보, 그리고 그마저도 윤색을 해서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토대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우리의 인식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분단,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김 귀 옥 자연스럽게 분단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는데요. 올해 분단 70년을 맞는데 대체 나의 삶에 분단이 무슨 의미인지, 분단이 내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고 형 욱 분단을 생각해보고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많아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저희 20대가 대부분 통일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는 상황이죠. 내 삶과 통일이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인식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봐요. 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통일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통일의 당위성만 외치는 방식으론 힘들다고 보고요. 분단이 된 지 70년이 되었다고 해서 최근 이벤트성 행사가 많았고, 그래서 그나마 관심이 생긴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사실상 저도 제 삶, 일상 속에서 분단이라는 것을 깊게 인식하고 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방금 말씀드렸던, 북한이탈주민을 더 알고 싶은 마음과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문제점들이 극복되기 위해선 북한의 1차 자료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저는 북한학 전공자인데도 <노동신문> 같은 자료를 보려면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더라고요. 예전에 북한의 문학과 예술이라는 수업에서 북한의 시를 강의용 유인물로 받아본 적이 있는데 수업 끝나고 교수님께서 다시 걷어가며 학생 수와 맞는지 수량 확인을 했거든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저도 이런데 일반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조금 심층적인 관심을 갖고 자료를 보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죠. 다른 나라에 대해선 충분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경직된 분위기에서 정보를 얻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것이 분단이 제 삶에 주는 영향이 되는 것이죠. 정보를 얻는 것과 표현하는 것의 부자유 속에 분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 현 주 저도 이 말에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중국에 유학 갈 때 여러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회주의 국가잖아요. ‘가서 말조심, 행동조심 해야지.’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겁을 많이 줬어요. 우리와 다른, 대척점에 있는 정치, 체제, 문화 등에 대해 분단사회 안에서 북한이라는 사례를 통해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고 따라서 이런 인식이 중국에 들어갔을 때 ‘감시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저도 모르게 전이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실 가보면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해오면서 ‘분단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 생각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 두 형 저희 50대는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사이에 소위 끼어 있는 세대입니다. 앞서 표현의 부자유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저희는 ‘북한은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던 그런 세대였어요. 궁금하고 뭔가 아닌 것 같아도 ‘그거, 아닙니다.’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예전에 라면 과자라고 꼬불꼬불한 라면 모양으로 튀긴 과자가 있었는데 포장지를 보면 거기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었어요. 당시 붉은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했는데, ‘파란색이 작고 붉은색이 커서 그 라면과자 제조회사 사장이 잡혀갔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란 말입니다.
사실 저는 집에 붉은색 옷이 없어요. 아이들에게도 ‘붉은색 가방, 옷, 신발 같은 것을 자제해주면 안되겠느냐.’ 하는 권고까지도 제가 실제로 하고 있더라고요. 아직까지도 붉은색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죠.
이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과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북한에서 넘어 온 학생들이 남한에서 제일 고민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한국사에요. 그 아이들은 제대로 된 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어요. 김일성 주체사상 속에 있는 역사가 전부죠.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울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요. ‘과연 어떤 교과서와 어떤 교재를 만들어 남북한의 학생들이 함께 배워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큰 과제 중 하나죠. 제가 교과서 검정을 하다보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는데, 자유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검정이 통과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북한도 정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는데 ‘단순히 민주주의라 하면 북한의 민주주의와 무슨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냐.’는 지적이 들어오죠.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분단이라는 현실이 교과서에 나타나는 거죠.
교직에 있으면서 분단을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을 데리고 안보체험을 가서 아이들의 반응을 대면할 때입니다. 학생들과 간부수련회를 전방부대로 가서 1박 2일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수색대대가 남방한계선과 불과 500m 거리에 위치했거든요. 도착할 때는 밤이어서 몰랐지만 아침에 아이들이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잤다는 거예요?’ 하면서 놀라더군요. 또 수색대대원들이 남방한계선 경계근무를 하면서 철책을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자 학생들이 ‘군인아저씨들 죽으면 어떡해요.’ 라고 걱정하기도 했죠. 매우 직접적인 경험이지만 학생들의 그런 반응들을 볼 때 ‘이게 분단이구나.’ 하고 느끼죠.
변 준 희 분단은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분단이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이죠. 분단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 그것이 우리 사회와 삶 속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일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스물세 살 때 중국에서 피신 중이던 어떤 탈북자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분단이라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됐어요.
제가 외면해 왔을 뿐 여전히 분단은 남북한 사회에서 수많은 비극을 파생시키고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죠. 그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고 나서야 내 자신이 통일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야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분단’이라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죠. 끊임없이 자신의 우위성을 증명해야 하는 경쟁의식과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 그런 나라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삶은 더 고단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윗세대 분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통일을 말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 귀 옥 진정 우리 사회에서 통일을 말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로 하는 것이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고 형 욱 아이스크림을 북한말로 얼음보숭이라고 한다는데 요새는 북한 사람들도 얼음보숭이라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잖아요. 지금의 통일교육이 실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트렌드에 맞게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것을 건드려 줘야지, 아직도 우리 교과서를 보면 틀에 박힌 보여주기식 콘텐츠가 많아서 아쉬워요. 미디어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도 조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통일담론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통일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인 내용으로 환기시켜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은 통일에 대한 경제적 혜택과 관련한 내용들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규모가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일상생활 속에서 통일이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찾아내고 발굴해서 공론화 하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일상의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많이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김 현 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전까지는 통일이라는 이슈보다는 안보라는 것에 더 중점을 뒀다고 봐요. 제가 어릴 때 북한이 한 번씩 도발하면 슈퍼마켓에 라면, 생수 같은 생필품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그랬잖아요. 당시 사람들은 진짜 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살잖아요.
북한 문제는 넓게 생각해 자유에 대한 문제와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문제로 접근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족 문화의 회복’, ‘민족 정체성의 회복’ 같은 이야기는 사실 많이 와닿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하고요. 우리가 분단 사회를 살아가면서 너무 익숙해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억압 같은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통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해주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그리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변 준 희 윗세대는 통일의 당위성에 집중하여 ‘통일하면 이게 좋고 저게 좋고.’ 하면서 대부분 경제적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는 방법이라고 봐요. 그저 통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이야기만 해서는 설득도 안 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부딪혔을 때 한계가 올 거예요. 분단의 치부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진정한 통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저는 통일이 결혼과 비슷하다고 봐요. 결혼은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쉽게 결정하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알아보고 나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우리도 만나지 않으면 북한이 어떤지 알지 못한단 말이죠. 북한과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함과 동시에 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확대될 수 있도록 북한 관련 정보 제공의 폭을 확대해야 합니다. ‘오해’가 아닌 ‘이해’가 있어야, ‘두려움’이 아닌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통일 논의가 가능하겠지요.
이 두 형 ‘왜 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각보다 많이 나올까.’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죠. 대부분 경제적인 이야기인데요. 통일에 대한 찬반이 논제로 나오면 찬성 쪽에서는 통상적으로 하는 경제적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반대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비용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하죠.
저는 분단과 통일에 관련된 비용, 그리고 통일편익이라는 부분에 대한 상쇄성 효과 같은 것을 일반인들이 서로 함께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 간의 문화 동질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교류, 만남의 자리를 가짐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총평 | 김 귀 옥
분단 70년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나이가 어릴수록 통일이나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이가 들수록 통일과 안보를 당연시 한다고 한다. 과연 실제 우리 세대들은 분단과 통일을 어떻게 느끼며 살고 있을까. 오늘의 좌담회는 여러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대의 학업과 취업, 진로의 고민과 절망, 30대의 결혼과 출산, 육아, 자녀교육 등으로 더 깊은 고민, 반공과 통일교육의 과도기 세대인 40대의 냉소주의, 50대 이상 무조건 반공통일 세대가 다른 세대와 겪는 인식의 차이 및 소통의 어려움 등. ‘세대 크레바스(generation crevasse)’는 허구가 아닌 삶의 현주소에 가까이 놓여 있었다. 세대마다 가정, 학교, 사회를 둘러싼 경험이 너무 달랐다. 1970~1980년대 반공교육에 대한 경험에 대한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2000년대 6·15 남북공동선언과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을 둘러싼 경험의 온도차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여 좌담회가 막바지를 가면서 분단이 무감각화 되어 가는 원인과 분단의 고통에 공감대를 이루었다. 또한 통일을 위해서는 정부의 남북 간 신뢰회복을 쌓기 위한 일관성 있는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하고, 학교나 일반 사회 또는 매스컴에서의 다양한 평화·통일의 길찾기와 노력이 필요하며, 남북 사람들의 다양한 교류와 소통이야 말로 우리 안의 세대 크레바스를 극복할 수 있고 남북의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자 김귀옥 /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이두형 / 서울 양정고 인문사회교육부장(50대)
김현주 / 용인대 중국학과 초빙교수(40대)
변준희 / 통일드림 사무국장(30대)
고형욱 / 동국대 북한학과 학생회장(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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