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분쟁 25시 | 일인지배체제 종지부, 불확실성 가중되는 리비아 내전 2015년 10월호
세계분쟁 25시 18
일인지배체제 종지부, 불확실성 가중되는 리비아 내전
2011년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된 리비아 내전은 카다피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째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는 한반도의 8배에 해당하는 176만km2의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북부 연안에 위치해 알제리, 이집트, 차드, 수단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리비아는 사하라사막의 일부인 리비아사막이 전 국토에 펼쳐져 농경지는 해안과 내륙 오아시스를 합쳐 총면적의 1.42%이고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은 6.8%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 매장량이 470억 배럴, 천연가스 매장량이 1조4,950억m3로 북아프리카 자원 부국 중 하나이다.
자원 부국 혜택, 소수 지배계층에 집중돼
1952년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리비아는 왕국형태를 유지했다.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카다피는 정부조직의 공식직함은 없었지만, 사실상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2009년부터 카다피는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Saif al-Islam)에게 후계권력 승계를 추진했으나 내전이 발발하면서 무산되었다.
카다피는 1969년에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2011년 8월에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무려 42년간 집권해 왔다. 카다피는 일인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의회나 정당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혁명의 핵심동지였던 잘루드(Abdessalam Jalloud) 전 총리를 숙청하는 등 정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들을 제거했다. 카다피 일가는 약 1,500억 달러로 추정되는 재산을 부정으로 축재해 사치스런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의 장기집권과 부정축재는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염증과 민심이반을 가져오는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 리비아는 2010년 말 기준 원유 매장량이 470억 배럴(세계 점유율 3.4%)로 아프리카 제1위의 원유 보유국이자 일 166만 배럴을 생산하는 산유국으로 1인당 GDP가 1만2천달러를 상회하는 중소득국가이다. 그러나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이 일부 지배계층에만 집중되어 소득 불평등이 높다. 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리비아의 지니계수는 174개국 중 154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젊은 계층의 실업률과 소득불평등은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반정부 시위가 가속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1년 2월 15일 벵가지에서 카다피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이로 인해 수천여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리비아에는 500여 개 부족이 있다.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리비아 최대 부족인 와르팔라 부족, 3대 부족의 하나인 주와이야 부족 등이 독재와 부정부패에 반발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며 반정부 진영을 구성했다. UN의 군사개입 승인 결의와 NATO의 공습 개시로 리비아 내전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2011년 3월 19일 프랑스, 영국 등을 중심으로 NATO군의 리비아 공습이 개시되었다.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어려움을 겪던 반군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친정부 세력은 내부 이탈이 가속화되었고, 반군은 NATO의 지원으로 점차 조직이 체계화되면서 반군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2011년 8월 21일에 트리폴리에 반군이 입성하면서 8월 23일에 정부 진영의 핵심 거점인 대통령궁이 함락되어 6개월간 지속되던 내전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2011년 10월 카다피가 사망하자 리비아 정국의 주도권은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중심으로 한 시민군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뚜렷한 동기나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 여러 세력들의 이합집산으로 이루어진 NTC는 리비아의 재건이나 정상화를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NTC를 위시한 반 카다피세력은 반정부 시위발발 당시 카다피 축출을 위한 연대를 구성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제거된 이후 이들의 정치적 연대에 대해서 그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리비아 해안에서는 유럽으로 가는 난민이 다수 발견된다. 이는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리비아를 거쳐갈 뿐만 아니라 국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리비아 난민의 수 또한 많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탈리아 살레르노 항구에서 지난 4월 22일 발견된 리비아 난민의 모습 ⓒ연합뉴스
내전으로 지난해 사망자만 1천여 명
2011년 내전 발생 이후 리비아에서는 5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2014년에도 국가권력과 정치체제의 향방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반대세력 간의 내전은 계속되었다. 2014년 한 해 사망자만 1천여 명에 달한다.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는 오히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시민군을 이루던 세력들은 제각기 분열했고, 리비아 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국제사회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있고 이제는 관심도 저조하다. 리비아 국가재건 작업은 연착륙의 과정과 국제사회의 공조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의 원만한 해결과 정상적인 국가재건은 리비아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지역, 중동, 그리고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현재 유럽으로 유입되는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이 리비아를 거쳐 들어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리비아 앞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변한 지 오래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리비아 해역에서 사망한 난민 숫자는 2,200여 명이다. 리비아의 정정불안과 치안부재가 난민들의 탈출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리비아 국내 정치 세력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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